# 독서

불편한 편의점ㅡ김호연ㅣ성취와 일상의 그 어드매에서

whateverilike 2022. 11. 1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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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일상 힐링 소설. 우리가 너무 큰 성공과 성취에만 매몰되어 일상의 소중함을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평범한 이들의 소소한 성취

소설은 각 챕터별로 다른 주인공을 설정하고 그들의 삶을 그린다. 교사 은퇴 후 노후 자금으로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장님, 기억을 잃은 노숙자, n년차 공시생, 철없는 아들내미, 아들과 소통이 단절된 어머니, 노숙자의 뒤를 캐려는 심부름센터 사장 등... 일상적이고 소시민적이다. 특별한 이벤트들도 별로 없다. 그냥 시험에서 떨어지고, 편의점 업무를 배우고, 배우에서 작가로 전향 후 글을 쓰고...  

메인 주인공은 편의점 사장님 염영숙 여사, 노숙자 독고씨다. 독고는 실제 이름은 아니고 기억을 잃은 노숙자인데, 염영숙씨가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파우치를 훔치지도 않고 잘 돌려주어 연은 시작된다. 염영숙 여사는 편의점 폐기 도시락을 독고씨에게 제공해주고, 편의점 저녁 마감일을 하던 사람이 그만두자, 독고씨를 고용하게 된다. 독고씨는 말을 더듬는 노숙자였지만 숙소를 잡고, 씻고 다니며 더듬던 말을 고치고 사람에게 진실로 대해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

회사에서 밀려 가족과도 사이가 소원해 편의점에서 매일 소주를 까던 직장인에게 그의 쌍둥이들이 부모님 고생하신다며 늘 1+1 초콜릿만 먹는 걸 알려줘 가족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해준다. 할머니들에게 편의점의 행사들을 잘 설명해주고 배달도 해주어 새로운 소비자로 이끈다. 배우에서 극작가로 전향했으나 변변찮던 작가에게 편의점 일상을 같이 이야기 나누며 글감을 준다. 자신에게 편의점 업무를 가르쳐주던 공시생에게 유튜브 채널 개설을 제안해 편의점 지점장 제의까지의 계기를 만들어 준다.

이런 소소한 일상들에서 등장인물들은 독고씨의 덤덤한 위로와 조언에 감화되어 더 개선된 삶을 살아가게 되고, 결국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알 풀린다. 

 

 

힐링 도서의 재유행

우리는 종종 큰 성취감을 원한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적 삶에서 벗어나 무언가 하나의 큰 성공을 원하고, 특별한 경험과 감정을 갈구한다. 실제로 주변에서는 인생의 노잼 시기라며 울적해하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이런 세태에서 불편한 편의점은 편의점이라는 일상적인 공간과 등장인물을 배경으로 소소한 성취를 인지시킨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크고 멋있는 성공이 아니더라도, 술을 끊고 대신 옥수수수염차를 마시거나, 대화가 단절되었던 아들과 대화의 물꼬를 트는 등, 하루하루를 영위해나가고 일상의 소중함을 포착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는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예전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하마터먼 열심히 살뻔했다' 등의 에세이가 유행했는데, 이런 에세이는 주로 현실을 포기하고 타협하는 내용이었다. 요즘 힐링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은 세태를 배경으로 이런 힐링 도서가 다시 유행한다는 건 좀 씁쓸하긴 하지만 그래도 현실에 대한 포기를 넘어 힐링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가는 것은 장족의 발전이 아닌가 싶다. 

 

 

사실 이런 류의 소설을 읽는 이유 자체가 바로 이런 위로를 바라서일 것이다. 다만,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존재를 상정함에 있어 초반에는 노숙자라는 의외의 인물을 등장시켰지만, 결국 그 노숙자도 대단히 뛰어난 의사였지롱! 의 반전은 어느 정도의 지위가 있는 사람의 조언만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우리네 세태를 지적하는 것일까. 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지체장애를 가진 이도 사회에서 한몫을 해내는 일원이라는 교훈을 그리는데, 결국 변호사와 같은 '사짜' 직업만 성공의 지표로 삼는 것이냐는 비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도 그 부분에 대해선 일맥상통한다. 독고씨는 사실 의료 사고의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성형외과 의사였다. 공장형 수술로 본인이 상담한 환자가 죽어 소송에 휘말리자 부도덕적인 성형외과 원장의 운영과 자기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껴 기억을 잃어 노숙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독고씨가 위로를 주는 방식은 일부 그의 과거 엘리트 경험에 의존해 너무 가르치려는 느낌이 있었다. 

 


 

 

여하튼 나는 꽤나 재밌게 읽었다. 나는 이런 류의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런 거 치고 억지스럽지 않고, 유머코드도 나랑 맞아서 표현이나 묘사가 재밌었다. 가벼운 힐링 소설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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