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팔꿈치를 주세요-김멜라, 김초엽 외 4명ㅣ성소수자의 삶. 무엇이 보편적인 일상인가.

whateverilike 2022. 11. 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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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에 대한 신선한 접근. 하지만 신선하다고 느끼는 것 또한 소수자성이겠지




편협함에 대한 자기반성

만약 이 책이 사랑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을 느낀다면 본인이 동성애에 편협한 생각을 가졌는지 반성해보자.

실제로 박서련 작가의 '젤로의 변성기' 챕터는 평범한 사랑이야기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서 거북함을 느끼는 내가 선입견에 휩싸인 인간이라는 자기반성을 할 수 있었다.


소설에서 아이돌 출신 어린 성우 희강과 30년째 애니메이션에서 젤로라는 인물의 목소리를 담당하는 성우 선재는 애니메이션 영화화 녹음 현장에서 만나게 된다. 희강은 선재의 오래된 팬이라 성우를 지망했고, 선재는 희강에게 사랑에 빠진다. 30년째 같은 목소리로 어린 소년인 젤로를 담당한 선재가 희강에게 진실된 사랑을 느끼며 성장하자, 목소리가 변해간다는 내용의 소설 '젤로의 변성기'는 내가 은교를 처음 봤을 때의 불쾌감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은교보다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동일한 수준으로 불쾌했다. 그건 내가 단순히 연령차이가 많이 나는 사랑이야기를 선호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동성애 키워드가 들어갔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게 아닐까.




소수자성에 대한 접근

예전에 어딘가에서 들었던 말이 있는데, 소수자성이 느껴지지 않을 때 진정으로 소수자성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왜, 영화를 보더라도 한 캐릭터가 동성애자인 게 그 캐릭터의 중요한, 메인이 되는 특징이 아니라 그저 머리색이 갈색이다~와 같이 평범한 구성요소 중에 하나일 때 진정한 political correctness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정확히 대척점에 있다. 메인 키워드가 애초에 '소수자'이고, 주인공들이 겪는 시련과 경험들은 전부 그들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서수진 작가의 '외출금지'장에서 희율과 은영이 호주로 이사 가는 것, 서로 싸우게 되는 것, 코로나19로 인한 격리기간에 우울함을 느끼는 것은 언뜻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경험 같지만, 사실 그들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발생했다. 둘이 싸우는 주제는 결국 호주에서 느끼는 '가명'과 정체성의 openness이기 때문이다. 은영은 자신과 사귀기 이전에는 남자와 사귀었던 희율에 불안감을 갖고, 희율은 은영이 자신이 레즈비언이 아니라 은영과 일시적으로 사귀는 이성애자라고 자신을 동성애자로 인정해주지 않아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서수진 작가의 외출금지에서 호주의 락다운을 단순히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이야기에서 확장해(혹은 specialized해) 성소수자의 갈등으로 읽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OPENNESS, 그 한계와 갈등을 오가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드러낸다는 책의 목적성은 충분히 의미 있고, 감회가 새롭다.

 


성소수자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한계 때문인지, 가끔 작위적인 부분이 있기도 했다. 예를 들어 김멜라 작가의 '논리'에서는 알파벳 L로 레즈비언을 유도해 딸의 동성애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각을 이끌어내는 게 좀 어색했다. 본인이 원하는 표현과 비유를 사용하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내는 느낌. 딸 이름이 장엘리인데 엘리가 자꾸 알파벳 L에 집착한다. 왜? 자기 이름에도 L이 들어가니까. 근데 그렇게 라이트, 러브.. 이어지다가 뜬금없이 레즈비언이 나온다. 정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연상법이다. 소재도 너무 많았다. 엘사, 바다, 교통사고, 자연에 대한 지식, 부모의 죽음, 부모의 동성애에 대한 지지 등.... 왜 예전에 엘사가 유행하며 여자아이들이 더 이상 핑크색이 아닌 파란색을 선호하게 되어 색깔에 대한 선입견이 완화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논리에서 역시 이 부분을 차용했다. 그냥 읽으면서 아,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썼구나... 정도까지 읽히는 부분이었다.

 

김초엽 작가 악개(악성개인팬)

사실 이 책은 김초엽 작가의 단편을 읽기 위해 시작한 책이다. 그리고 첫장을 펴자마자 딱 김초엽 작가의 글임을 알 수 있었다. 딱 봐도 신기한 키워드들과 SF적인 표현들.


애초에 김초엽 작가는 다른 작품에서도 '정체성'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작가이다. 늘 정체성은 무엇인가, 사람을 사람으로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통찰이 담긴 글들을 많이 썼는데(방금 떠나온 세계의 '로라', 수브다니의 여름휴가가 그러했다.), 그래서인지 '성 정체성'과 관련된 캐릭터 설정이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초월적이지만, 자연스럽다


한 몸 안에 두 개의 자아를 지닌 셀븐인. 라임인 '메인' 정체성은 본인이 레즈임을 안다. 그러나 다른 자아인 '레몬'은 스스로를 남자로 인식하여 여성적 신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지구를 떠나 스쿠버다이버로 활동한다. 그 과정에서 둘이 류경아라는 둘이 동시에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하고, '레몬'이 사라지자 그 빈자리를 느끼며 자아 분리 수술을 하려던 원래의 결정을 취소해 '레몬'을 드디어 본인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공존하기를 결정한다. 

 

김초엽 소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바로 '바다'이다. 사실 김초엽뿐 아니라 많은 작가와 창작자들이 상징적인 공간으로 바다를 많이 차용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의 '나의 우주영웅에 관하여'나 「수브다니의 여름휴가」가 그렇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그 답이 나온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곳. 내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지 않는 곳'.

 

나는 이 거대한 외로움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었다. 하지만 레몬은 진작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외로운 세계가, 그렇기에 얼마나 자유로운지.



성 정체성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 결국 '진정한 나', 정체성이라는 것은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그 누구의 가치판단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마주하는 나 자신일 것이다.

 


 


큐큐퀴어단편선은 매년 1권씩 출판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퀴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다양한 색깔이 드러나고 모두의 사랑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을 꿈꾼'다고 한다. 실제로 2022년까지 네 권의 단편집이 출판되었고 각각 유명하고 유망한 작가들이 많이 참여했다. 



결국 퀴어, 또는 소수자성에서 중요한 것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이다. 전혀 특이하지 않고, 그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 다수에 속해있는 것 또한 특권이니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 사회의 편협함으로 귀결되는 나의 고정관념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퀴어의 삶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고 싶을 때 읽을 만한 책, '팔꿈치를 주세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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