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요리코를 위해-노리즈키 린타로

whateverilike 2021. 11. 2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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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일본스러운 소설. 등장인물의 관계나 묘사 및 반전 등은 딱 일본 소설이나 일본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정형화된 패턴들이다. 베스트셀러라 읽었는데 왜 내가 그동안 일본 소설을 읽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책. 하지만 소설은 쉽게 술술 읽히고 결말까지의 과정은 자연스럽기 때문에 평소 일본 소설을 잘 읽은 사람에게는 흥미진진하게 읽을 만하다.  

 

 

 

 

 


 

 

 

소설은 크게 세 줄기로 구분된다.

 

1. 요리코의 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경찰을 믿지 않은 채로 스스로 정황증거를 수집하고, 용의자를 좁혀가 용의자를 죽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일기 2. 자살을 한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사건을 재수사하게 되는 과정 3.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

 

 

1.에서 요리코의 아버지는 딸이 살해당하고 당시 뱃속에는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에 분노해 딸의 학교에 찾아가고 친했던 친구들과 만나며 학교의 영어 선생을 용의자로 결론짓고 칼로 살해한 후 자살한다. 2.에서는 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요리코의 살해 사건이 더욱 기사화되고, 요리코의 출신학교는 이를 막기 위해(학교 이사장이 정치권과 관련이 있으므로) 각각 경찰청의 사람과 사설탐정이자 소설가인 린타로를 고용해 사건을 그럴듯하게 덮게끔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린타로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이 모든 사건 이면의 사실을 발견해낸다. 3.에서 린타로는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은 한 명 한 명 만나가며 본인의 추리를 확인하고, 마침내 자살이 미수로 끝난 요리코의 아버지에게까지 사건의 진실을 확인한다. 

 

 

 

 

  개인적으로 읽기 거북했던 이유는 일본 감성이 나와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추리소설 작가이자 탐정이 등장한다는 것에서부터 지극히 일본풍이 느껴지는데, 이 작가(탐정)도 일본 컨텐츠에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다. 은혼의 긴토키 같은 느낌. 평소에는 허술하고 유쾌한 쾌남!이지만 본업에는 열정적이고 사실은 능력캐라는 설정이다. 또한 맨 처음에는 아버지의 반협박, 개인의 흥미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정의를 위해 애쓰고 피해자를 진심으로 위하며, 권력에 이용되는 학생들을 젠틀하게 위로하며 그녀들의 심정도 어루만진다는 사려 깊은 성격은 좋은 설정은 다 “멋있는” 주인공에게 몰빵하는 일본 감성이라는 느낌을 책을 읽는 내내 지울 수 없었다. 

 

  또한 캐릭터의 묘사에서도 일본 감성을 지울 수가 없는데, 바로 지나치게 미적인 관점에서 인물의 외양을 묘사하는 것이다. 만약 한 캐릭터를 묘사하려면 머리는 갈색에 하얀 피부에 오뚝한 코, 큰 눈의 눈빛은 예리했다. 이런 식으로만 묘사하면 되는 것을, 젊은 시절 뭇 사내들의 눈길을 끌었으리라. 14년간의 수인 생활도 그녀의 한결같은 미모를 앗아가지는 못한 듯 하다, 매혹적인 어쩌구... 이런 식으로 소설의 진행과정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등장인물의 매력을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할 때마다 구구절절 소개한다.

 

 

 

  물론 위의 내용들은 사실 소설의 내용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소한 호불호이다. 그러나 마지막 반전이 내게는 기가 찰 정도였다. (스포) 

 

  반전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극히 딸을 사랑해 복수를 자처한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사실을 요리코를 증오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아내를 하반신마비로 만들게 한 사고의 원인 제공자였으며, 이로 인해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들마저 유산된다. 그러나 요리코는 어머니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유혹”하고 결국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요리코를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었고, 아내를 충격에 빠트리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거짓 복수 살인을 꾸몄던 것이다. 대체 언제적 프로이트에 언제적 엘렉트라 콤플렉스인지...? 과연 딸이 아버지를 성애적으로 사랑했다는 반전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마지막 큰 폭탄이 되어야 할 반전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대체 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딸의 감정이 성애적으로 발휘하는 걸까요? 단순히 판타지가 아닌지...? 차라리 거짓 살인을 꾸미는 과정에서 요리코의 아버지가 요리코가 생전에 방문했던 산부인과를 찾아가 임신확인서를 한 부 더 받고 영어교사를 살해한 뒤 그 집에 들어가 임신확인서를 영어교사의 서랍에 넣어두는 치밀함이 더 흥미진진했다.

 

  또한 두 번째 반전은 바로 아내가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을지도!라는 것이다. 물론 이건 아리송하게 린타로의 머릿속 독백으로 끝나지만 아내가 사실은 남편의 외도와 딸과의 관계를 알고 남편의 사랑을 시험하기 위해 소설 속의 모든 사건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아니 무슨..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도 아니고 아내를 무슨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만들어 딸을 임신시키고 애먼 사람을 죽인 명백한 가해자인 남편의 잘못을 감형해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불쌍한 꼭두각시? 린타로가 결국 요리코의 아버지에게 모든 사실을 확인하고 자리를 비켜주어 다시 완벽하게 자살할 수 있게끔 자리를 비켜주는데,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 지탄받아야 하는 아버지의 자살이자 죗값을 치르지 않는 도피 행위를 “도와주는” 행위가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본인이 무슨 자격으로 판단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면서 결국 제목의 “요리코를 위”하는 사람은 린타로 단 한 사람뿐이었다는 결말도 지나친 자의식 과잉이다.  

 

  소소한 반전들은 차치하고서라도(아내바라기인 줄 알았던 요리코의 아버지가 사실은 집의 도우미와도 관계를 맺었고, 요리코의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영어교사가 사실은 학교 이사장과 불륜 관계였고) 성애적 사랑과 관련된 모든 반전들이 이 소설의 목적은 에로스적 사랑을 지탄하려는 것이었는지 헷갈리게 할 정도다.   

 

 

 

 


 

 

 

 

  사실 이런 류의 장르소설은 어디에 초점을 두고 감상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장르소설 팬들이 장르소설이란 무릇 소설의 설정이나 반전의 내용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내용 그 자체만으로 클루를 찾아내 추리를 맞춰나가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이 소설은 상위의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아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등장인물의 백그라운드가 나왔고 크게 비논리성 없이, 어색하게 스토리의 흐름을 깨지 않고 적절한 타이밍에 소개되었다. 이 백그라운드를 근거로 또 다른 클루를 찾아내는 것도 합리적인 수준이었다. 진정한 소설의 반전을 모든 추리가 다 끝났다고 생각할 즈음 반전의 당사자들과만 공개하는 것도 무게감있는 한 방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의 장르소설 신작을 찾는다면 추천할 만한 책, 요리코를 위하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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