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과 도시괴담, 그리고 살인사건을 절묘하게 섞은 서스펜서 추리 소설.
홍보문구의 “마지막 네 글자의 충격”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소설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몰입해서 다 읽은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이었다. 첫 번째 반전까지는 재미있게 읽는 수준이었는데 마지막 반전은 알자마자 소설을 전반적으로 다시 보며 어디서 복선이 나왔는지 찾아볼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아래 내용은 스포왕스포가 들어있으니 주의 바란다.
소설은 뮈리엘이라는 향수를 뿌려야만 발목을 잘라가는 살인마인 레인맨으로부터 살해당하지 않는다는 소문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 소문은 사실 국내에 뮈리엘이라는 향수를 홍보하기 위한 WOM(word of mouth) 기법으로 신생 광고 회사이지만 능력 있는 쓰에무라 대표로 이미 실력을 검증받은 컴사이트라는 회사의 전략이다. 시부야에서 트렌드세터인 여학생들을 모아 새로운 향수의 모니터링을 명목으로 레인맨 소문을 퍼트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컴사이트에 외주를 맡긴 회사 소속인 가토와 니시자키는 컴사이트의 대표인 쓰에무라와 회의를 하는데 이때 니시자키는 그런 부정적인 소문이 미칠 영향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레인맨이 한 여학생을 죽이고 발목을 잘라가는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시체는 알몸에 그 어떠한 유류품도 없었지만 그 주변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머리카락과 여러 개의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소설은 고구레와 그보다 상사인 여자 경부보 나지마가 함께 피해자 주변의 신변 수사를 담당하는 파트너가 되며 시작한다.
첫 번째 희생자인 다카하라의 살인범과 그 주변을 탐색하며 나오는 “특이한 외양”, “화려한 외양”, “스타일을 바꾸면 누군지 알아보지 못할”, “요란한 스포츠카” 등 다양한 단서들이 나오는데 대부분이 뒤에 밝혀지는 사건들의 복선이 된다. 그러는 도중 두 번째 희생자가 나오는데 그녀는 고구레의 딸인 나쓰미의 친구였던 “아오타 구미”였다. 나쓰미는 실의에 빠지고 집을 자주 비우는 아버지에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날들이 늘어난다. 두 번째 살인 이후 고구레와 나지마는 두 희생자가 같은 향수를 썼다는 것을 알아내고 나아가 같은 모니터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것까지 파악한다. 이때 고구레는 딸인 나쓰미를 통해 당시 모니터 아르바이트에 참여했던 피모피모라는 친구를 통해 모니터 아르바이트에 참여했던 학생들 몇을 모아 모니터의 내용과 레인맨이라는 소문의 출처까지 알아낸다. 나지마와 고구레는 살인사건이 이 레인맨과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해 나지마는 소문 발생의 시간차와 정확성의 차이를 비교해 지도에 표시하며 소문의 중심이 7월의 시부야임을 알아내고 수사망을 좁혀가던 와중 세 번째 희생자가 나타난다. 그러나 알고 보니 세 번째 희생자인 줄 알았던 “미사키 야스요”는 6월에 살해된 첫 번째 희생자였고 발은 한쪽 발만 잘려있었다. 또한 나지마가 매니큐어는 없지만 페디큐어만 되어 있고, 페디큐어의 색깔이 발가락마다 다르며, 네일 실의 방향이 마치 남이 해준 것처럼 뒤집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해 지문 채취를 다시 할 것을 요청한다. 그러면서 컴사이트의 이사인 아소 이사가 수상하다는 니시자키의 목격담을 듣고 아소의 집을 스토킹 피해(아소가 피해를 호소한)로부터 보호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불시 검문하며 그가 마약범이자 유통판매업자라는 걸 알아내고 체포한다.
재수사 결과 세 번째 피해자인 미사키 야스요의 발에서 지문이 채취되었고, 컴사이트 회의에서 카드 브레인스토밍에 집요하게 레인맨 살인과 유사한 12사도 이야기를 작성한 필체가 확인되어 나지마와 고구레는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범인의 자택으로 향한다.
(스포)
레인맨은 니시자키이고, 그의 살해 동기는 딱 발 패티시였다. 과거 잘나가는 구두 디자이너였던 그는 여자에게 차인 후 실의에 빠져 미숙한 운전 실력으로 위험한 도로를 달리다 사고를 당해 오른손을 못 쓰게 되고 후천적 색맹을 지니게 되었다. 이후 직장에서 잘리고 현재의 도쿄에이전시에 다니며 구두 디자이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본인의 이상향인 크기 230mm에 모양이 예쁜 발을 지닌 여자들을 골라 살해하고 발을 잘라 페디큐어를 칠하고 본인이 디자인한 구두를 신기고 **하는 등 사체를 유린한다. 물론 첫 살인은 본인의 집에서 동거했던 “사키”라는 인물이다. 초반에는 휴대폰 즉석만남 사이트에서 만나 성관계는 하지 않고 단순히 동거만 하는 관계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알고 보니 그건 니시자키의 상상이었고(아마?) 사키는 첫 만남에서 약을 탄 술을 니시지마에게 마시게 하고 지갑을 훔쳐 도망가려다 잡혀 살해당한다. 이 첫 살인이 니시자키에게는 각성제가 되고 그 뒤로 레인맨 모니터링에서 알게 된 학생들 중 모니터 조사 명단에 적힌 자기소개란의 발 사이즈, 그리고 모니터링에서 실제 보았던 발의 모양을 보고 피해자를 정해 살인을 거듭했다. 이 부분은 나지마 경부보가 계속되는 살해 사건과 남편의 과로사를 입막음하기 위해 자신을 특진시킨 일본 경찰청에 대한 환멸에도 불구하고 계속 수사과에 남아있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변태 사이코들의 피해자는 늘 여성이기 때문이다.
니시자키가 도망가다 난간으로 뛰어내려 죽게 되고, 이 레인맨 연쇄살인 사건은 컴사이트 대표 “쓰에무라”를 마지막 희생으로 수사가 종결된다. 니시자키가 마지막 살인으로 쓰에무라가 완벽한 타깃이라고 생각했다는 묘사가 나오고 이미 망가져버린 기존의 발들은 버리기 위해 이동하다 죽은 시점 몇 시간 전이 쓰에무라의 사망시간이며, 쓰에무라의 두 발도 절단되어 있고 주변의 머리카락, 여러 개의 족적이 레인맨 살인사건의 정황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을 자를 때 쓰던 도구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나지마와 고구레의 연인관계로의 발전을 보여주며 소설은 끝이 나...다 마지막 쿠키가 있다.
니시자키가 범인임은 20장에서 눈치챘다. 고구레가 니시자키의 얼굴에 위험함이 읽힌다는 암시를 주었으며 “사키”라는 체인 메일을 계속 받고 중간에 갑작스레 사라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첫 번째 희생자(실제로는 사키를 제외하고 두 번째 희생자)가 보도되는 뉴스를 보고 그 희생자의 얼굴이 사키의 얼굴이다, 그러나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 사키는 양발이 있었다...라는 식의 묘사도 나오고... 처음부터 좀 수상하기는 했다. “사키”는 니시자키의 첫 번째 희생자인 사키코였다.
(스포왕스포)
그러나 마지막 반전인 나쓰미의 살인은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보통 추리소설은 마지막에 숨겨진 반전이 꼭 하나씩 있나? 쿠키영상 같다. 맺음말에 따르면 마지막의 단서까지 찾아가는 것이 서스펜서라는 장르라고 한다. 지난 일본 추리소설인 “요리코를 위해”도 그렇고 꼭 마지막에 무언가 “충격적인!” 반전을 암시하는 단서를 제시하고 끝난다. 여하튼 “요리코를 위해”와는 달리 이 책의 마지막 반전은 진짜 상상도 못 했던 반전이라 적잖이 놀랐다. ㄴㅇㅁㅇㄱ 알고 보니 쓰에무라 대표를 죽인 건 나쓰미였다는 것이다. 살해 동기는 자신의 친구를 죽인 것에 대한 복수인데, 고작 두어 장의 대화로 나쓰미와 친구들의 실체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들었어? 레인맨 잡혔대.”
(중략)
”그 재수없는 남자도 잡혔다던데? 우리가 마크했던.”
”우리가 휴대폰으로 메일 보낸 놈 말이지?”
(중략)
”오랜만이잖아. 구린 옷 입은 촌뜨기 주제에 시부야에서 잘난 척하며 나대던 머리 긴 여자 이후로는 처음이지.”
(중략)
”역시 그 여자 앞잡이였던 거야.”
”그래, 맞아. 우리가 잘못한 거 아니야. 원수는 제대로 갚은 거야.”
1. 아소 이사에게 협박 메일을 보내고 스토킹을 했던 것은 이 세 명이었다.
2. 니시자키의 첫 번째 희생자였던 야스요 사키코에게 협박 문자를 보냈던 것도 이 셋이다. 즉 초범이 아니다. 니시자키가 회상하는 “사키”는 지방에서 올라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가졌으며 핸드폰으로 살해 협박 문자나 체인 문자를 계속 받았다는 묘사가 있다.
3. 쓰에무라 대표를 죽인 것은 레인맨, 즉 니시자키가 아닌 이 셋이다. 실제로 쓰에무라 대표가 살해당할 때 “여자아이인가...?”라는 묘사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쓰미와 친구들은 레인맨인 척할 수 있었던 걸까?
1. 사체 발목 절단 도구와 부위. 26장에서 나쓰미가 고구레를 통해 알아낸다. 발목을 자르는 도구가 무엇이었느냐는 딸의 물음에 고구레는 “톱”이라고 답하며 복사뼈 살짝 위를 손으로 긋는 시늉을 한다.
2. 어떻게 컴사이트의 관계자들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을까? 답은 피모피모이다. 피모피모는 나쓰미와 니시자키의 두 번째 희생자인 미유키와 구미의 공통 친구로 독특한 스타일로 구미와 마찬가지로 뮈리엘 모니터링에 참석한 친구이기 때문에 쓰에무라 대표와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쓰에무라 대표 사체 주변의 245mm의 한 개의 족적과 230mm인 두 개의 족적. 일단 나쓰미가 230mm이다. 26장에서 고구레의 물음에 230mm라 답하며 에리는 자신보다 키는 작은데 발은 크다는 것으로 보아 에리가 245mm 일 것이다. 그럼 피모피모라는 친구가 230mm 일 텐데, 27장에서 니시자키가 마지막 희생자를 고를 때 중머리를 한 학생이 두 번째 희생자인 구미와 함께 230mm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의문점도 여전히 있다.
1. 시체 주변의 족적과 머리카락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저 뉴스에서 나온 사건 개요를 통해 알게 된 걸까?
2. 니시자키가 잡히기 전의 타이밍을 어떻게 알았을까? 만약 니시자키가 이미 잡히고 난 다음에 쓰에무라를 죽였으면, 혹은 니시자키가 도망치다 죽지 않고 쓰에무라는 본인이 죽인 게 아님을 밝혔다면 꼼짝없이 새로운 수사가 진행되었을 텐데 타이밍을 맞춘 게 아무래도 궁금하다.
3. 어떻게 친구의 복수로 살인을 생각했을까? 살인은 계속 에리 집에서 잠을 자며 계획했다 해도, 분노를 살인으로 실천하기에는 너무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읽다 보며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쓰레기구나 싶다. 왕년에 SM클럽에서 여왕님 역할을 하며 레인맨 살인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쓰에무라 대표, 출장 중 마약 밀반입으로 직전 회사에서 잘린 약쟁이 아소 이사, 도덕심이라고는 없는 책임회피자 가토, 여자가 안 만나준다는 이유로 실의에 빠져 사고를 내고, 우연히 한 여성을 살해함으로써 연쇄 살인마로 거듭나는 열등감쟁이 니시자키, 200여 명이 넘는 온라인 네트워크로 협박 메일이나 보내며 살인까지 저지르는 나쓰미. 그저 순박하고 정의로운 나지마 경부보와 고구레가 순박하게 연애나 했으면 좋겠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몰입력 있고 재밌었다. 다만 초반에 여학생들 커뮤니티를 위해 일본 이름이 너무 많이 나와서 흐린 눈으로 읽었기 때문에 앞부분에 있었을 클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반전들을 모두 알고 소설을 다시 보면 아는 만큼 복선들이 다시 보이게 될 흥미로운 서스펜스 소설, 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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