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고 끌리듯이 읽은 책.
정신병리/신경학적으로 이상이 있는 사람들의 모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사람들을 소개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의사로서 관찰하는 것에서 나아가 인간으로서 '영혼'의 유무에 대해 고심하고 그들의 인간성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예찬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 인지와 판단
책 제목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환자는 사물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상상하는 능력을 상실한 시각인식불능증 환자이다. 시각피질의 이상 때문에 아내를 보고도 그것이 '사람'이나 자신의 '아내'라고 판단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눈을 감은 채로 사과를 떠올리라 하면 그렇지 못하고, 담당의사를 자신의 동창으로 착각하는 등 실제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판단' 능력이 없는 것이다.
고유 감각의 상실
밤에 눈을 떴는데 침대에 낯선 사람의 다리가 있어 그걸 침대 밖으로 던졌더니, 내가 침대 밑에 떨어져 있는게 아닌가! 그 다리가 알고 보니 나의 다리였다!
나는 똑바로 걷고 있는데 사람들이 자꾸 내가 몸을 45도로 기울이고 삐뚤게 걷는다고 한다. 난 잘 모르겠는데!
우리는 고유감각이 있기 때문에 내 몸이 내 몸인 것을 안다. 우리 몸에는 숨어 있는 세 개의 감각이 있다.
3중위 감각제어시스템은 속귀감각(평형기관, 전정계), 고유감각, 시각. 이상이 없는 신체더라도 신경학적으로 지각 능력이 없다면 운동성을 갖춘 개체라 할 수 없다. 물론 3중위 감각제어시스템은 각각 어느 정도 수준으로는 대체 가능하다. 시각 < 고유감각 < 속귀감각으로 미약하게나마 대행할 수 있다. 전정 시스템을 상실한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가 거울을 보고는 자신의 몸을 똑바로 세울 수 있는 경우가 바로 이 예시이다.
소설 '방금 떠나온 세계'에는 신체 지도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하고 살아가는 '로라'라는 장이 있다. 실제로 자신의 몸이 물리적인 신체 자체와 다르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자신의 팔은 원래 3개여야 한다던가, 등에 팔이 하나 더 있다던가 하는 생각이다. 이들도 신체에 대한 고유 감각을 잃어버린 환자들일 것이다. 소설에서는 이들이 자신만의 조직을 구축해 분리되어 살아가지만, 현실에서는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 기억과 연속성
나는 아직 18살인데, 내 형은 언제 저렇게 늙었지?
내가 군대에 있을 때는 생생히 기억하지. 어떤 전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까지 나온 전투기 모델은 무엇인지. 근데 저런 최신 모델이 있었다고?
특정 시점에 기억이 멈추고 그 이후의 기억은 전혀 하지 못하는 역행성 기억상실 증후군 환자는 '인생을 살았다'라는 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뇌손상으로 시신경이 훼손된 사람은 본인이 전혀 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맹인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본다'라는 관념 자체를 잃어버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군대에 있을 때는 모든 걸 선명히 기억하는 사람이 제대 이후의 기억은 아무것도 못해서 지금 물어본 걸 3초 뒤에 물어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되묻는 것도 미래, 인생이라는 관념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런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들은 사건의 연속성, 연속적인 내면의 이야기를 상실해 거짓말을 지어내는 이야기광이 되곤 한다.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과 감정 심지어는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 루이스 부뉴엘
그러나 이들이 과연 '영혼'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종종 관자엽 발작을 일으키는 환자들은 단어나 연속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사칙연산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구체적인 사안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추상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리베카처럼 감정적/이야기적/상징적 능력이 현저히 발달하면 시인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언어를 늘어놓거나, 사칙연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쌍둥이 형제가 소수 계산, 달력 계산 등 '숫자'를 보는 것에는 능한 케이스들이 많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영혼'의 존재들이다.
전반적으로 내가 지금 평온하게 살아가는 삶을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는 책이었다. 왜, 질병과 관련된 책을 보면 내가 그 증상이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고는 하는데, 이 책은 그 반대로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를 느끼게 된다.
인간은 몸과 영혼, 이분법적으로 나뉘고 몸이 불편한 사람해도 인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영혼'을 신경 의사인 작가는 조용히 관찰하며, 응원한다. 그들의 병을 병이라 보지 않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영혼이나 능력의 특별함이라고 보는 시각이 독특했다.
사실상 병례집(병리학적인 사례집)에 불과하지만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는 것처럼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그들 나름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례를 읽으며 삶의 태도에 대해 관조할 때 추천할 만한 책,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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