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수브다니의 여름 휴가ㅡ김초엽ㅣ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행복의 추구

whateverilike 2022. 8. 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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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는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다.
밀리의 서재에 신작이라고 떴길래 냉큼 봤다. 밀리의 서재는 선공개라 그런지 딱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만 단편으로 담겨있다.





사장은 원래 단단한 재료로 조각을 하다가 유동적이고 쉽게 뭉개지는 재료로 넘어갔는데, 그랬더니 형상을 조형하는 방식도, 감각하는 방식도, 상상하는 방식도 바뀌더래요. 인간의 재료가 달라진다면 인간과 세계의 상호작용도 바뀌지 않을까?



소설은 자신이 도망간 사이 자신의 집을 치워준 언니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솜솜 피부관리숍에 근무해 고객이 원하는 대로 그들의 피부를 바꿔주는 보조역할을 한다. 물고기 비늘을 달거나, 손가락 끝에 노래방 조명을 달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다 사장이 계속 거절한 손님인 '수브다니'를 만난다.
(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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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브다니는 자신의 몸을 금속으로 바꾸고 싶어 했고 그렇게 되면 피부의 '기능'을 잃기 때문에 사장은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수브다니는 인간형 시술을 받은 안드로이드이자, 유명한 시각예술 작가 남상아와 2인조 작업을 했던 예술가였다! 그의 본명은 '최수안'. 최초에 남상아와 공동작업을 했을 때는 혹평을 받았지만 최수안이 안드로이드이자, 원래 스캔들을 몰고 다니던 남상아와의 연인 관계임이 드러나자 언론의 관심은 그들에게 쏠렸다. 그러나 그들은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다투게 되었고, 남상아는 죽고 수브다니는 그녀의 유작을 훔쳐 달아난다. 그리고서는 솜솜 피부관리숍에서 피부를 금속으로 바꿔달라며, 그리고 어깨에는 그녀의 유작이었던 금속을 붙여달라고 요구한다. 수브다니가 안드로이드임이 밝혀지자 사장과 주인공은 시술을 준비하고, 수브다니의 어깨 금속 장식을 수용한다. 그러나 시술 후 경찰과 언론이 찾아와 수브다니의 행방을 묻자 사장과 주인공은 숨어지내게 되고, 그러다 수브다니의 죽음에 대해 듣는다.

그러나 숨어 지내는 곳에서 주인공은 수브다니가 죽지않고 살아있음을, 자신이 바닷가에 누워 녹슬어 가는 사진을 보내 그들에게 알렸다. 왜 금속 피부 시술을 받고 싶냐는 주인공의 물음에 "녹슬고 싶어요."라 한 답변은 <변화의 실행>이라는 남상아와의 과거 작품 메이킹 필름에서 엿볼 수 있었다. 기계들을 바닷가에 반쯤 걸쳐놓고 하체가 녹슬어 가는 장면들. 그러나 수브다니는 기계와 같이 놓여있어도 녹슬지 않는다. 그리고 그 옆에 인간인 남상아. 그 양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동시에 두 존재 사이를 연결할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던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수브다니가 새로 보내온 사진에서 그의 하체는 이제 녹이 슬었다. 그는 이제 녹슬 수 있다.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으로 회고한 것 아닐까. 그러나 여전히 남상아 유작은, 어깨에 남아있는 장식은 녹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떤 존재다, 라는 인식은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요?



전에도 느낀 거지만 김초엽 작가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본인의 전공 때문인지는 몰라도 껍데기인 물리적 신체와 영혼이라 할 수 있는 그 내면의 본질을 늘상 비교한다. '방금 떠나온 세계'의 '로라'가 그랬고 이 책 또한 그렇다. 인공 장기 배양 회사, 인공 피부 시술소, 자신이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이라고 믿는 아더킨(Otherkin) 등의 존재들이 그렇다. 본연의 것에서 탈피해 본인이 원하는 모습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것. 이 유토피아를 작가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외양을 바꿔나가고, 그로 인해 남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본인은 행복한... 정체성의 추구는 곧 행복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갈망, 혹은 진짜 내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란 대체 뭘까요? 그것은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서 한 사람의 뼈를 이루게 되는 걸까요.


주인공은 어렸을 때 꿈이 인형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물론 누구나 어렸을 때는 다 터무니없는 존재를 꿈꾼다. 그건 그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동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좀 더 구체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우울할 때 눅눅해지고 기분이 좋을 때 보송해지고.. 화가 나면 마구 패도 되고...

그렇다면 개인의 정체성이란 주변 사물들의 특성을 취합하여 인간적으로 발현된 게 아닐까. 그게 인간적으로 발현되지 않고 사물의 특성 그대로 발현된 게 아나킨들이고. 장기이식을 해 오래 살려는 인간의 욕망과 금속 피부를 달고자 하는 욕망은 결국 비현실적이며 개인적인 영혼을 충족시키고자 한다는 차원에서 동일하지 않을까. 과연 우리는 아나킨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작가는 개인의 정체성 추구를 강조하면서도 결코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간과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늘 특이한 개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들도 함께 담아내며, 그중 그들을 이해하는 소수의 시각을 빌린다. 신체 변형이나 아나킨들을 이해하는 솜솜 피부관리숍과 그 거리가 그렇다. 소수자성은 언제나 존재하고, 그들을 질타하는 다수 중에서도 그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역시나 단편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김초엽 작가의 특유의 낭만 SF소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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