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후기를 보면 내가 어릴 때 하던 생각이다..!! 이런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인간 실격에 대한 평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특히 읽으면 토나온다는 후기가 매우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감상은 극과 극일 것이다. 주인공에 대한 혐오감이나 동질감. 그리고 나는 혐오감을 느꼈다.
인간실격 줄거리
인간실격은 전반적으로 주인공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정신병동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주인공의 시각에서 시간순으로 묘사한다. 그는 여러 여성들에게 신세를 지다가 그 스스로의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동반자살을 기도하고, 그와중에도 본인만 살아남아 자살방조죄로 재판을 받다, 결국 끝끝내 자신의 아내와 옛 동료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읽으면서 참 유약한 사람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인생에서 커다란 시련을 직면하지 않았으면서 자살하겠다고 징징거리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대단히 자기연민에 빠져있어 그런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고 자신을 돌보는 여자들을 비하한다.
"여자에 대한 관찰을 저는 일찌감치 어릴 때부터 해왔지만 남자와는 달리~" 이런 대목이 종종 나오는데, 이게 바로 "관차르이 맹점"이다. 본인이 실제로 봤기 때문에 객관적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미 확립된 가치관으로 동일한 사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돼 확증편향으로 가치관이 강화될 뿐인데, 주인공은 계속 그런 삶만 산다. 결국 정신병동에 가치고 이제 인간으로서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해 "인간실격"된 괴물이라고 판단하는데도 그 스스로가 관찰해온 "인간들"과 본인의 차이점으로 유일한 조건인 "사회/공동체 소속"을 박탈당했기 때문아닌가.
다자이 오사무란 누구인가
"천성적으로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 때문에 타인에 대한 시선을 놓친 적이 없는 이 작가로 하여금 남다른 도정을 걷게 만든 요인이 되고 있다"
"혜택받은 자로서 못 가진 자에 대한 죄의식 내지는 부채 의식을 평생 업고처럼 짊어졌던 작가"
문학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4가지가 있다. 절대주의적, 표현론적, 효용론적, 반영론적 관점
작품 그 자체로만 놓고 작품 내의 소재들만 해석하며 감상하는 절대주의적 관점, 작가의 관점, 의도 등을 파악해 해석하는 표현론적 관점, 독자들의 배경지식과 유형을 기준으로 해석하는 효용론적 방법,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상을 근거로 해석하는 반영론적 방법이 있다.
다자이 오사무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이 소설에 대한 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뒤에 해설의 표현론적, 반영론적 관점을 수용하며 속을 좀 풀 수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지방의 유지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고등학생 시절 마르크스 사상을 접하며 프롤레타리아적 삶을 살지 못하는 본인의 태생을 부끄러워 했고, 방황하다 결국 큰 의지를 하고 있던 집안과의 절연으로 인간성을 실격하는 과정을 거쳤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며 자신의 부유함을 부끄러워 했을 것이란 대목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선천적 원죄 의식이 한 사람의 일생을 좌우한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도 아니지만 날 때부터 가슴에 박힌 주홍글씨. 다자이가 자살을 기도한 가장 큰 요인이 생가와의 관계 단절이다. 생가에 이정도로 큰 영향을 받고 의지했으면 부채 의식이 가슴을 누르기는 했을 것 같다.
다자이 오사무 문학, 무뢰파 문학과 퇴폐주의
다자이 오사무는 그 문학의 시초로 패전 후 일본 상황의 모순과 격변하는 시대에 철저한 자기부정의 시각으로 철저히 외면한다. 그가 가담했던 여러 사회운동 역시 그는 돈만 대줄 뿐 직접적인 관여를 하거나 노력은 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사회가 격변하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느껴질 때, 온갖 허위와 위선을 타파하고자 '혁명'을 지향하다 기존의 두꺼운 벽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절감한 자가 목숨을 걸고 자기 파멸로 치닫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것이다. 패전 후 침략전쟁을 성전으로 옹호하고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떠들어대던 지도층 인사들이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이 민주주의를 논하고, 공산당 인사들까지도 점령군 통치하의 주어진 자유에 도취할 때 다자이는 맨정신으로 살아갈수 없을만큼 부끄러웠을 것이다.
일본 무사도의 근간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있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자이 역시 어떻게 죽을 것인지 늘 생각하고 시도했다. 사실 그는 심지어 죽으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많이 알아보지 않았고 그저 쉬운 방법으로, 근처의 방법으로 죽음의 문을 두드렸을 뿐 죽기위해 열심히,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아 허무주의적인 경향이 강하다.
청춘의 한 시기에 통과 의례처럼 거친 뒤 잊히는 작가, 청춘의 서라는 표현 역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타자의 시각과 자신에 대한 평가를 받아들일 때가 바로 청춘이라 그런 것일 거다. 상처받고, 자기 혐오에 걸리고, 무력감에 빠지고.
또한 그의 단편인 '직소'에서 그의 죄의식과 자부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도 그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었다 .예수를 밀고한 장사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예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의 아름다움을 찬양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진실된 마음과 숭고함은 깨닫지 못한 장사꾼 유다. 그 불치(不致)에서 오는 부끄러움에 대한 자기방어 수단으로 예수를 밀고한다. 아무리 그의 곁에서 최선을 다해도 본인의 천성인 장사치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예수가 없었다면 유다의 고뇌도 없었을 것이라는 프랑수아 모리아크 말처럼 다자이의 고통은 그의 탄생과 배경 자체에서 시작된다. 결국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는 불교의 인드라망. 하지만 왜 천국을 바랄까. 지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어서? 그럼 하늘에는 완벽함이 있을까음? 그 확신이 없으면서 일단 벗어나고 보려하는 경향이 심하다. 너무 심약해서 하늘의 완벽함을 알아볼 생각도 겨를도, 에너지도 없는 사람. 그 선천적 성향이 생의 고통의 근간이다.
수오지심(羞惡之心)
현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절망이 요구되는 격변기로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이 다시금 빛이 발할 때라고 한다. 모든 가치관, 윤리관이 전도된 패전 후 문학의 첫 페이지에서 다자이 오사무나 사카구치같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작가가 놓인 것은 다행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부끄러움이란 무엇일까. 본인이 사랑하는 생가와 프롤레타리아적 공적(公敵)인 집안. 선천적 심약에서 저지른 여러 과오들. 그걸 고치고 바로잡으려는 의지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결국 이문제는 선천적 심약함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저지른 과오들은 부끄럽지 않았을까? 생이 그러했으니 사는 본인 마음대로 죽고 싶었나. 하지만 그렇다고 죽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한 건 또 아니다. 심지어 첫번째 자살은 시험공부를 하지 않고 놀다가 집안의 기대감에 부담스러워서 한 자살이지 않은가. 시대적 격변기로 그의 자기연민이 두드러졌다고 하기에는 너무 개인적 회피성향 이유라 공감이 어려웠다.
나같은 범인은 감히 이해하지 못할 예민한 감수성이지만..나는 자기연민을 싫어한다. 분명 내 주변에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치열하게 본인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주변부에 암처럼 퍼져나가 부정성의 굴레를 만드는 건 지양해야 하는 태도 아닐까. 시대적 배경, 태생적 모순을 차치하고서라도 특유의 무력감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전후 세대 한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과 혼돈은 감히 내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홍콩이 영국의 200년 통치 이후 중국에 다시 수복되었을 때 몽유병 환자가 그렇게 많았다고 한다. 병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 전염병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전복된 가치관을 바로 세울 노력조차 하지 않는 무능하고 유약한 지식인의 전형. 그런 캐릭터를 욕하면서도 내심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시대적 무력감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하는 책,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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