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작별인사ㅡ김영하ㅣ인간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이고 무엇이 되고자 하나요.

whateverilike 2022. 8. 3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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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신작 작별인사. 초기에 그 어떠한 배경지식도 없이 봤는데, 김영하 작가가 이런 글도 쓰는구나 싶은 감성적인 소설이었다. 인공지능과 감성, 휴머노이드와 인간을 구분하는 건 무엇일까.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인간을 강하게 만들까.

 

 

소설은 휴먼매터스 랩이라는 휴모노이드 제작 회사/연구소에서 만들어진 '철이'라는 인간형 휴머노이드에 대한 이야기이다. 철이는 연구원이었던 최박사(아버지) 밑에서 스스로 인간이라 생각하며 여러 고전문학, 철학 서적, 음악, 예술 등을 접하고 홈스쿨링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다 아버지가 없을 때 아파트 밖을 나갔다가 무등록 휴머노이드로 발각되어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그 안에서 본인이 휴머노이드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이후 선이, 민이, 달마 등을 만나며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차이점.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전쟁을 생각하고 목도하게 된다. 철이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최신형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로서 세상이 멸할 때까지 살다 모든 기억을 업로드하지도 않고 오로지 본인이 간직한 채 소멸한다. 

 

 

몰개성과 개인

소설에는 두 가지의 '공동의 선'이 나온다. 첫번째는 선이의 우주정신이고 두 번째는 인공지능들의 거대한 네트워크이다. 선이는 언젠가는 우주정신을 모든 세계가 공유하여 만물이 하나로 만날 것이라 생각한 구도자였다. 수용소에서도 기계인간과 기계인간의 부품들의 거래를 중재하며 하나의 시스템과 다리 역할을 했던 그의 최초의 신자 '민이'는 애완용 휴머노이드로 생애의 의지가 있었으나 결국 뇌의 업그레이드는 실패한다. 두 번째는 인공지능들의 집합. 인공지능은 네트워크 상에서 다 연결되어 있어 신체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모두의 감각에 접속할 수 있다. 개인은 그저 네트워크 상의 노드들로만 존재하게 된다. 

 

오직 인간만이 호기심과 욕망, 신념을 가지고 다른 세계를 탐험하고 그들과 교류하려 할 거야. 감정이 있는 존재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래야 그 결정들을 바탕으로 발전을 할 수가 있는 거야.

 

이 두가지 공동성은 결과적으로 같아 보일지언정 언급한 화자가 정반대라는 점이 흥미롭다.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 노력한 선이와 인간의 무용성을 인식해 기계들의 세계를 만들고자 한 달마. 불교에서는 다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선이 있다. 결국에 인간들은 모두 소멸하고 인공지능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존재하게 된다. 만약 인간성과 신념을 갖고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했으면, 그건 어쩌면 선이가 말한 '우주정신'일지도 모른다(만약 인간성이 있었다면 단일체로의 통합 자체가 불가능했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인간성이 없는 인공지능에 의한 단일체라는 점에서 그 어떠한 가치도 없는 단순한 '집합체'일뿐이다.

 

 

 

인간과 이야기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소설에서는 여러 번에 걸쳐 이야기에 대해 언급하고, 소설 자체도 철이의 이야기 서술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철이는 꿈을 꾼다. 사색을 하고 스스로를 인간이라 느낀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이야기에 대해 고민한다. 휴머노이드가 죽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해서 그들이 인간인 건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기계 유지를 위해 위험한 상황을 피하게끔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뿐이다. 철이가 학습한 감성, 감정, 사색 등은 최 박사(아버지)가 추구한 바와 같이 고대의 지혜를 보존하다 르네상스의 시대에 전달한 중세 유럽의 수도원처럼 그 지혜를 '지식'이 아닌 '지혜'의 형태로 '저장'이 아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철이는 끝까지 최박사를 아버지라 부른다. 물론 마지막 장에서는 제3자처럼 최 박사라 언급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최 박사를 호칭할 땐 아버지라 부른다. 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유대감이 철이를 개별성을 가진 '철이'답게 유지하는 요소 아닐까.

 

 


 

 

사실 소설은 김영하 작가의 작품이라기에는 좀 밍밍했다. 분명 깊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는 한데 그렇게 깊게 느껴지지 않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담화였다. 달마, 선이/최박사, 철이라는 대척점에 둔 인물을 설정한다거나, 달마라는 네이밍 역시... 나는 이런 노골적인 설정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인식하지만 인간이 질 것이라 생각한 인간(최 박사), 본인이 인간이라 생각하는 휴머노이드(철이),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달마), 스스로의 정체성을 끝까지 찾아 헤매는 복제인간(선이), 인간으로부터의 사랑을 갈구하고 생에 의지는 절대 놓지 않는 휴머노이드(민이) 사이에서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고뇌해볼 수 있는 소설, 김영하의 작별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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