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지구 끝의 온실ㅡ김초엽ㅣ생존과 휴머니즘. 결국 인간에게 남는 건 사랑.

whateverilike 2022. 8. 2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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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장편소설은 못 참지. 이미 읽고 있는 책이 있었는데도 바로 읽었다. 초반에는 사실 좀 예측 가능한 내용이다 싶다가도 끝에 주제를 관통하는 장엄함이 느껴졌다.

 



이야기는 힌국 해월시에 나타는 정체불명의 푸른빛을 띠는 식물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된다. 때는 더스트 폴이라는 인류 문명의 종말 이후 재건 70주년. 더스트 폴은 2055년에 시작되어 2070.5월에 최종 종식되었는데, 원자 단위의 나노봇이 자가 증식해 나노 단위의 먼지를 끊임없이 만들어 인간의 몸에 침투해 중독 증세를 만들어 내고 외부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해 결국 인류 문명이 파탄이 나게 된 인재(人災)였다. 다행히, 더스트 대응 협의체가 더스트에 대응하는 증식형 분해제를 공기 중에 광역 살포해 더스트를 맞분해하는 디스어셈블러 방식으로 인류 문명은 재건될 수 있었다. 

 

 

과거로 회귀하는 이야기

그러나 이야기는 그 이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혀내며 전개된다. 1. 아영의 더스트폴 이후 재건 70주년의 현재. 2. 나오미의 더스트 폴 시절 프림 빌리지에서의 이야기 3. 지수와 레이첼의 프림 빌리지 건설 이전과 이후의 관계.

 

이 푸른빛을 띄는 식물 "모스바나"는 사람의 몸에 알러지성 반응을 일으키기도 하고 번식이 굉장히 빨라 주변 일대를 금세 덮어버린다. 연구원 소속 아영은 이 문제의 모스바나 식물을 조사하게 되는데, 자신이 어릴 적 옆집에 살던 "이희주 노인" 할머니가 마당의 푸른빛이 나는 덩굴을 보고는 했다는 기억을 회상한다. 또한 나오미라는 "마녀"라 불렸던 사람에게 연락이 닿아 이 푸른빛 식물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알고 보니, 현재 말레이시아 지역에서는 더스트 폴 직후 "프림 빌리지"라는 온실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있었다. 더스트 폴 이후 "돔"에서 쫓겨나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안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프림 빌리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최초 지수와 레이첼이라는 사람이 온실에서 체내 더스트 농도를 낮춰주는 더스트 분해제를 만들어 프림 빌리지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들을 받아주고, '마을'을 만들어 살았던 공간. 이곳에 더스트 내성종으로 아버지의 돔 출입권을 위해 팔린 두 자매 아마라와 나오미가 우여곡절 끝에 합류하게 된다. 그곳에서 내부에서는 '대니'가 마을을 확장하고 더스트 내성종 식물들을 외부로 퍼트리자고 주장하지만 레이첼과 지수는 반대하는 등 내부에서도 사소한 갈등이 좀 생긴다. 그러나 결국 대니는 내성종 식물과 식량을 가져 다른 마을로 탈출하고, 외부에 프림 빌리지에 대한 소문이 퍼져 결국 마을은 해체되고 만다. 그리고 이때 지수는 세계 각지로 떠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모스바나를 주고, 꼭 심어달라고 부탁한다. 

 

 숲 바깥의 세계에서 가능성을 찾아보겠다고.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자고.

 

아영이 이 기사를 내고 나서 여러 메일이 왔다. 더스트 대응 협의체의 과학적 기여를 무시한다는 항의 메일로부터, 자신의 조부모 역시 푸른 빛의 식물을 바라보았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지 몰랐다 등... 그리고 그중 한 연구원이 아영에게 보낸 메일에 따르면 더스트대응협의체가 증식형 분해제를 공기 중에 살포하기 전, 1차 감소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1차 감소가 있었기 때문에 증식형 분해제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결국 프림 빌리지 사람들이 전 세계에 심은 모스바나는 그들의 희망에 부합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모스바나와 휴머니즘

결국 프림 빌리지가 상징하는 것은 끝까지 살아남은 휴머니즘일 것이다. 돔 안에 들어가기 위해 더스트 내성종인 자신의 딸들을 팔아버리고, 힘이 없는 어린이와 여성들을 내쫓고, 그러면서도 더스트 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한 대안으로 "돔을 넓히는 것" 정도의 자신들의 생존만 우선시하는 방안을 내놓는 인간들의 이기심이 만연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를 양분 삼아 휴머니즘은 언제나 피어난다. 그리고 그 휴머니즘은 결국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낸다. 마치 모스바나처럼.

생존과 번식, 기생에 특화된 식물이지요. 마치 더스트 폴 시대의 정신을 집약해놓은 것 같다고 할까요. 악착같이 살아남고, 죽은 것들을 양분 삼아 자라나고, 한번 머물렀던 땅은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지수는 돔에서 나와, 여러 대안 공동체들을 떠돌며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모든 대안 공동체들은 늘 그렇듯 얼마 안 가 내분으로 해체되고 마니까. 그러나 서로에 대한 믿음과 더스트 내성종인 식물의 발견으로 사람들은 다시 "희망"을 가지고, 프림 빌리지가 해체되면서도 마을 사람들은 식물을 꼭 심어 달라는 지수의 약속을 지킨다. 전 세계로 분포된 사람들이 그 자그마한 "믿음"을 가지고 식물을 심었던 것이다. 지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렇다면 과연 레이첼이라는 존재가 없었어도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난 그렇다고 본다. 식물이 더스트 폴 이후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더스트 저항성을 갖춘 것처럼 인간들 사이에서도 내성종이 생겨나고 있었고,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결국은 적응해가지 않았을까? 모스바나는 전 세계 각지에 심어지고 뻗어나가면서 원래의 푸른빛을 잃고 변형되었다.  어디서부터 자연의 것이고 어디서부터 인간의 것인지, 혹은 기계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혼성체였다. 인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강인한 것이다. 

 

더스트 폴을 이겨낸 믿음, 신뢰, 사랑 그리고 성실함. 그 일반인들의 일상들이 세상을 구했고, 더스트 폴 재건의 시대에도 원죄를 씻을 수 있는 인간의 속성들일 것이다.

 

 

몇 년뒤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일의 삶만을 생각하는, 그러나 그 내일이 반드시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데에서 오는 매일의 성실함.

 

 


 

 

 

역시 김초엽 작가는 굉장히 로맨틱하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달까? 인간의 생존에 대한 열망, 그러나 동시에 공동체와 인류에 대한 애정. 그를 가능케 하는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를 역사가 기억하지 못하던 것을 드러내는 방법을 통해 감동을 극대화한다. 심지어 레이첼이라는 유기체 비율이 10% 미만으로까지 떨어진 기계 인간이, 지수의 "그래도 꽤 아름답네..." 말 한마디에 그 어떠한 기능도 없는 불필요한 돌연변이인 모스바나의 푸른빛을 제거하지 않았다. So romantic...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정석을 따르면서도 김초엽 작가만의 로맨틱한 문체로 풀어낸 소설 「지구 끝의 온실. 네이버 웹툰에 "숲 속의 담"이라는 웹툰이 있는데, 분위기가 굉장히 비슷하므로 전후로 본다면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더 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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