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ㅡ움베르토 에코ㅣ철학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미친 세상

whateverilike 2023. 1. 2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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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신박하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걸 이렇게 본다고...? 움베르토 에코가 딱 그런 사람이다.

일상에서의 사유와 고찰을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한 책,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 사회"를 바탕으로 사유한다.

유동사회란 중심을 잃고 표류하는 사회로 정체성의 위기와 가치의 혼란에 빠져 방향타가 되어 줄 기준점을 상실한 사회이다. 이로 인해 당연히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계층 갈등이 유발된다. 움베르토 에코는 그 혼란 가운데에서 기득권/연장자의 시각으로 새로운 사회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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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톺아보기

움베르토 에코는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미학자, 언어학자, 철학자, 소설가, 역사학자로 굉장히 박학다식한 학자이다. 책 곳곳에서 그의 지식의 융합을 엿볼 수 있다.


인상 깊었던 지점은 오늘날의 "관종"문화를 지적한 부분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지적에 따르면 국가, 혁명을 통한 위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버린 이 시대의 전형적인 특징은 분노를 동반한 항의 운동이다. 이 운동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는 알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른다. 이를 처절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요즘 사람들이 관종이 되고 미친 짓을 하는 양태이다.

오늘날 SNS를 통해 비도덕성을 전시하고, 방송에 나와 TMI를 전파하며, 심지어 연쇄살인의 주요 살인 동기도 언론의 관심이라고 보도될 때가 있다. 요즘 방송들을 보면 이혼, 이별, 전과자 등이 방송에 나오고 비연예인 대상의 관찰 예능도 늘었다. 이런 방송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굳이'의 느낌이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이를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부재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옛날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신만이 나를 아실거야','신은 날 이해해 주실 거야'라는 믿음하에 타인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런 가치관이 희석되며, 인정욕구가 해소되지 않아 이를 타인에게 강요하듯이 TMI를 흩뿌리는 것이다.

물론 일부분 공감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적용이 안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언제부터 종교 사회였다고... 그냥 관종들은 옛날에도 있었는데 플랫폼의 발전으로 전방위로 과시/전시가 가능해졌으면, 그를 보고 파급효과가 작용해 더 많은 관종들이 자기표출을 하고 있는 거 아닐까. 다만, 확실히 인정욕구의 충족이 과거에 비해 어렵다고 느낄 때는 있다.


혹시... 꼰대세요?

하지만 읽으면서 나이 때문인지, 서구문화권에 익숙해진 식자층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1. 오만하고 2. 꼰대같은 느낌을 적잖이 받았다.(순전히 내 개인적 감상이므로 번역이 잘못됐다거나, 내가 꼬인 걸 수도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는 종종 그랬다는 것이다)

1. 오만


2015년 파리에서 있었던 총기난사/테러 사건으로 무고한 시민 130여명 정도가 목숨을 잃은 참사가 있었다. 이를 언급하며 작가는 「우리의 파리」장에서 "다른 도시들에서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한 학살이 일어나는데도 왜 유독 파리 학살이 우리 모두에게 그렇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지 설명해 준다. 파리는 우리같은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고향이나 다름없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건 당연한 얘기 아닌가...? 본인이 유럽인이기 때문에 어디 뭐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매일 자행되는 테러나 전쟁보다 파리의 테러가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책에서 작가가 언급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보편적인 인류를 말하는 거 같긴 하다. 그래서 더 공감 안 됨), 나도 한국 부산에서 일어난 교통사고가 해외 폭탄 테러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선진국의 사건을 뉴스에서 더 심각하게 다룬다는 측면도 권력/power에 따른 언급 정도와 심각성의 차이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파리를 마치 엄청난 관념적인 공간으로 상정해 "우리 모두의 파리"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지나친 오만이 아닌가 싶다.

2. 꼰대


다음으로 성탄 구유가 사라지는 세태와 각 학교들에서 종교적 다양성을 이유로 크리스마스를 세지 않는 것에 반대하는 내용을 이루는 장에서 작가가 어떤 스탠스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는 수업시간에 이슬람 학생이 그가 던진 종교적 농담에 왜 자신의 종교를 존중하지 않냐고 따졌다고 한다. 이에 에코는 미안하다고 하고, 그 다음 시간 기독교 관련 종교 농담을 던지고, 그 학생도 웃었는데 에코는 학생에게 왜 자신의 종교는 존중하지 않느냐고 했다고 한다. 학생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본인이 잘못했다고 생각해 사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에코는 학생을 좀 더 관용의 길로 이끌었다고 한다.

여기서 기함을 토했다. 아니... 애초에 본토에서 던지는 본토의 농담과 본토에서 소외계층/사회적 약자인 대상을 상대로 한 농담이랑 같다고 생각하는 건가? 또한 이슬람 학생은 교수라는 권위적 인물이 자신이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장인 수업 시간에 던진 농담에 당연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관련 농담은 심지어 본인 입으로 스스로 던진 거 아닌가? 왜 여기에 이슬람 학생이 지적해야 하지? 너무 자기 자신의 의견만 맞다고 생각하고 그를 관철시키기 위해 상황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은밀하게 유도하고 자신이 깨달음을 줬다고 생각을 하는 모습이 딱 꼰대스럽고 쪼잔했다.

이 외에도 요즘 길에서 휴대폰에 시선을 뺏기는 학생들을 비판하며 일부로 맞은편에서 오는 여학생에게 부딪혀 사과를 이끌어 내고 길에서의 핸드폰 사용에 대한 위험성을 깨닫게 해줬다는 식의 글이나 소유물 중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것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누군가의 입에 핸드폰을 쑤셔 넣는 것은 그 사람의 성기를 잘라 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젊은이들의 핸드폰 중독에 괴이이이이잉장히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고나 여러 불운에 핸드폰을 들이밀어 동영상을 찍는 세태를 비판하며 타인의 고통에 냉담한 사람이 되지 말자고 하면서, 요즘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을 가르치려 드는 태도가 오히려 더 냉담한 거 아닌가...?





문체는 굉장히 유쾌하다.
간결하고 명쾌해서 잘 맞는 사람이라면 "이 형 멋있는 사람이네!"하고 좋아할 거 같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책이기에, 그만큼 그의 색채를 짙게 내뿜는 이 책에서 나는 좀.. 나랑은 맞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그래도 일상에서 접하는 신변잡기적인 사물과 사건들을 주제로 그의 지식과 경험에 의거해 여러 사유를 하는 것은 흥미롭다. 좌파가 정권을 잡을 때는 항상 '아니오'라고 했었는데 좌파가 주류가 되면서 이제 "예"라고 답변해야 하는 것에서 오는 좌파의 순수의 상실로 접근한 것도 흥미로웠다. 또한 종이 신문보다 인터넷을 더 가치 있게 보고 신문물을 받아들이며 그 사이에서 진실된 정보를 찾기 위한 비판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도 지식인다운 조언이었다.


또한 프레카리아트, 침묵의 증거 등의 사회학적 언어들을 배울 수 있어 나름 흥미롭게 읽었다. 철학자는 어떻게 일상을 바라보고 사유하는지 알고 싶다면 추천하는 책, 움베르토 에코의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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