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하며 힘차게 등장.
하지만 과연 나뿐일까...? 본인의 현재의 행동 양식과 사고의 원인을 찾고 싶은, 멘탈이 약하거나 불안정한 성인에게 추천하는 책.
'나'를 알아가는 시작점
나는 스스로 내가 회피형인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자기 분석'은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합리화에 빠지기 쉽고 그 정도의 특성은 다 가지고 있지 않나...?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피형인 걸 인식한 후로도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 추천으로 읽어봤는데 웬걸? 내 얘기가 여기있네! 실재 작가가 들어준 사례들이나 특징들 중 공감 가는 게 굉장히 많았다. 나의 애착 형성 과장을 회고해보고 파악해 현재의 선택들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회피성향을 조금은 완화해 볼까... 하는 심리상담의 효과도 느낄 수 있었다.
심리 상담의 효용
작가는 일본의 정신과 의사다.
그렇기 때문에 회피형의 사례를 환자/내담자들의 실제 예를 들어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심리 상담 = 설명적 접근 + 실천적 접근
심리 상담의 시작은, 즉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 이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진단'이다. 따라서 심리 상담도 마찬가지로 현재 나의 상태가 왜 이런지,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해 '설명'을 함으로써 어떤 부분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선제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특히나 애착형성의 경우에는 아주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영향에서 시작해 10대 20대의 트라우마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재 나의 성격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수적이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을 하지 않겠는가?
회피성 인격장애와 애착 형성
책은 5가지로 애착 성향을 구분하고 8가지의 인격 장애에 대해 소개한다. 그리고 이 인격 장애들은 대부분 애착 형성의 문제가 혼합적으로 발생해 생긴 문제들이다.
왜 예전에 유행했던 오은영 박사의 성인 애착 유형 테스트가 바로 이 내용이다.
애착 성향의 분류
1. 안정형
2. 불안정형
2-1. 불안형('포로형', 어린이의 경우 '양가형')
2-2. 회피형(애착경시형)
2-3. 공포회피형(어린이의 경우 '혼란형')
2-4. 미해결형
불안정 애착 성향 중 불안형은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한다. 그를 위해 친밀한 관계를 맺고 감사받고 싶어 하지만 그게 상대방 위주가 아니라 자신 위주라는 점이 회피형과 다르다. 회피형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 하고 그로부터 오는 책임감을 회피한다. 공포회피형은 불안형과 회피형이 합해진 애착 성향이고 미해결형은 애착의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가는 유형이다.
애착성향을 기준으로 나눈 인격장애
1. 회피성 인격 장애: 책임, 구속, 상처가 두려움
2. 의존성: 타인에 반응에 민감한 소심형
3. 강박성: 지나치게 책임감이 강한 노력형
4. 자기애성: 유아독존형
5. 반사회적: 냉정하게 타인 착취
6. 분열성: 힘께 있는 게 즐겁지 않은 고독형
7. 망상성: 친한 사람도 믿지 못하는 감시형
8. 경계성: 양극단을 오가며 자신을 혐오하는 자학형
자신이 완벽하게 안정적인 애착 성향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설령 그렇게 믿더라도 읽다 보면 나에게 해당하는 설명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안정한 인격 장애가 있다고 해도 낙담하지 말자.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자기 연민과 책임 회피에 치를 떤 적이 있었는데, 다자이 오사무가 회피형 인격 장애의 전형인 듯하다. 책에 따르면 다네다 산토카라는 일본 시 하이쿠의 작가 역시 회피성향이 심해 제국대학 진학도 단념하고 중요한 시점을 버티지 못했다고 한다. 구스타프 융, 마야자키 하야오도 회피형 인간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역사 속에서도 회피형으로 보이는 인물은 굉장히 많다.
회피형의 특성
회피적 애착 성향의 가장 큰 특징은 친밀한 신뢰 관계와 그에 따른 지속적인 책임을 피하는 것이다. 회피성향은 자기표현을 잘 못하고 사람 자체를 회피하기 때문에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 더 어려워진다.
타인의 고통이나 괴로움에 대한 회피형 인간의 태도는 공감이 아니라 냉담, 무관심, 분노, 초조, 연민인데, 이 연민도 우월한 입장에서 내려다보며 느끼는 감정이라고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좀 소름이 돋았는데, 타인이 나에게 뭔가 도움을 요청할 때 나는 일단 짜증이 난다. 내 일도 아닌데...? 그리고 이성을 다잡아 도와주려 할 때도 이것도 못하나..?라는 우월한 입장을 고수해 타인에게 연민을 느낀다. 이 감정도 결국 회피형으로써 타인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회피형 인간은 기분을 확실히 표현해달라거나 느낀 점을 말해달라는 물음에 답변하기 어려워한다. 타인과 나의 감정을 배제함으로써 나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페터 비에리의 「 삶의 격」에서 타인과 나의 감정적 거리가 허물어지면 나를 잃기 때문에 개인의 독립성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타인에게 나를 완전히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고 사적 은밀함을 지킴으로써 개인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회피형 인간은 이 부분이 더 심한 것이다. 그래서 상담이 필요해 만난 상담사에게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회피형 인간들은 금욕적인 자기 단련을 통해 인생의 길을 닦아간다. 통제가능성을 향상하고 책임을 질 일을 줄이기 위함이다.
이처럼 회피형 인간에 대한 여러 특성을 각 내담자의 사례를 통해 소개하기 때문에, 내가 회피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약간의 공감대는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 나잖아...?"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 의외로 많다.
회피성향의 원인
그렇다면 이 회피성향은 왜 생길까?
상식적으로도 생각이 가능하듯이, 과거 부모의 양육 방식 때문이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 관계는 평생의 애착 형성에 매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연구결과에서는 2개월의 애착 형성 실험이 그 아이의 애착 성향에 평생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물론, 실험 후에도 그런 양육 방식을 가진 부모와 살았기 때문에 생긴 걸 수도 있겠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바로 공감과 반응이다.
또래 집단에서의 상처도 트라우마가 되어 회피 성향을 야기한다. 회피형 인간의 심리구조는 이중의 회피반응에 의해 강화되는데, 1. 이미 상처를 받은 상황에서 또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는 방어반응과 2. 회피하려 해도 회피할 수 없을 때의 정신적 동요와 거부반응이다. 따라서 제대로 상처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계속 그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회피 성향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신생아실로 분리가 되고, 어린이집부터 시작한 보육 시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간병 시설까지 가족 내에서가 아니라 돌봄의 기능을 하는 사회 시설이 많이 생기며 탈애착형 사회가 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뭐, 회피 성향이 된 건 내 탓이 아니다!
해결방법
그렇다면 이 회피성향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까?
폭로요법_ 예기불안 없애기
리프레이밍_너무 높은 기대치 낮추기
모리타 요법_있는 그대로 불안한 '감정'을 방치하기
충격적 경험에 직면_필요할 땐 행동하게 됨
내측전두전야 활성화하기_핸드폰 줄이고 몸을 움직이기
동호회 나가기ㅡ친목에 취약허기 때문에 취미위주의 단체
자신의 인생에서 도망치지 말기
위에서 봤듯이 회피 성향이 강화되는 것은 다시는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는 정신적 동요 때문이다. 따라서 그 상황 자체를 피하게 되는데, 상처받을까 봐 지레 겁먹고 회피하지 말고 불안감을 없애자. 마찬가지로 완벽한 상황을 생각하기보다는 상대방이나 상황에 대해 높은 기대치를 낮추고, 상처를 받았을 경우에는 그 불안한 감정을 그대로 수용하고 그저 흘려보내자. 또한 사람은 누구나 필요할 땐 행동하게 되기 때문에 충격적인 경험에서 계속 도망치지 말고 직면하자.
내측전두전야는 사회적 뇌로 상대방을 보고 그의 기분을 유추하는데 기여한다. 이는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로 그를 활성화하기 위해 핸드폰을 줄이고 몸을 움직이자.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연습도 해야 하는데, 이때 회피성은 친목에 취약하기 때문에 취미 위주의 단체부터 참여해 보도록 하자.
사실 다 아는 이야기이다. 실천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또한 흥미로운 점은 회피형 인간에게 제안하는 실천방안 뿐 아니라 그 주변인이 어떻게 회피형 인간을 대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는 것인데, 이 지점이 바로 작가가 내담자/환자를 생각하는 정신과 의사임을 알 수 있다. 회피성향의 개선은 개인의 의지뿐 아니라 주변인의 환경적인 도움도 필요하고, 주변인도 힘들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안전기지 만들어주기
공감을 바탕으로 응답하기
흥미를 알아채주기
부담주지 않기
먼저 손 내밀기
안전 기지는 어느 때든 괜찮다고 말해주는 안정감을 회복시켜 주는 존재이다. 우리가 밖에서 상처를 받고 돌아와도 편하게 회복시켜 주는 존재. 상상만 해도 편해지는 존재 아닌가. 공감을 바탕으로 한 응답으로 회피형과 소통하고, 부담 주지 말고 상대의 흥미 위주로 관계를 좁혀가며, 먼저 손을 내밀자.
자신의 인생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페터 비에리의 「 삶의 격」에서는 진정성을 잃어버린 삶, 즉 거짓으로 일관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사실을 견디어내는 용기가 없는" 존엄성을 상실한 삶이라고 얘기한다. 내가 나의 인생을 조절할 수 없다는 느낌은 기분 나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회피에서 벗어나 나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요인 아닐까.
사실 회피 성향의 사람들에게 해결 방법을 제안하는 책이라기 보다는, 고단하고 치열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나"를 위한 삶의 태도와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책, 오카다 다카시의 「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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