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개인주의자 선언-문유석ㅣ사회 안의 개인, 그 안에서의 권리와 의무

whateverilike 2023. 7.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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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문체와 명확한 가치관.

문유석 판사의 소시민적인 삶의 태도와 동시에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책

 

읽으면서 굉장히 공감이 많이 됐다.

 
 

 

 

인간혐오와 개인주의자

문유석 판사는 이 책 초장에서부터

당당하게 본인은 인간 혐오임을 밝힌다.

 

 

다만, '세상과 전면적인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다'기보다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관계를 맺고 내 공간을 침해받고 싶지 않아 한다.

 

나는 이 부분이 굉장히 공감 갔다.

 

집단주의적인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아니 그냥 집단주의적인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하는 개인주의자 선언이 얼마나 사회 부적응자 같아 보일까.

 

 

하지만 행복도가 높은 나라들은 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북유럽, 미국 등...

 

 

집단주의가 팽배한 사회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 기준이 무시당하고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흔히 SNS의 발달로 외모지상주의와 소비주의가 심해졌다고들 하는데,

우리나라는 원래부터 지위재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모든 것이 서열화되어 있고 수직적이고 획일적인 문화의 한국.

 

공통적으로 공유되는 지위재를 추구하지 않고, 획득하지 못하면 루저로 취급받는 삶이 대한민국을 불행하게 만든다.

 

실제로 요즘 취업을 포기한 청년들이 많다. 구직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왜? 양질의 일자리는 줄고, 그 양질의 일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안 해버리고 말지.

 

이런 세태는 악순환을 유발하고, 결국 불행한 사회를 낳는다. 그게 지금의 현실 아닌가.

 

 

이런 문화는 '팩트'에 대한 집착으로 연결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팩트체크'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우리나라는 팩트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가치중립적인 '팩트'란 없다.

 

 

이에 망발을 하면서도 '그게 사실 아니냐?'라며 뻔뻔하게 나오고, 그 속 시원한 본능의 배설이 찬양받고, 그로 인해 소수자성은 더욱 강화되어, 이분법적인 사고로 계층 갈등을 심화된다.

 

다양성이 무너진 사회는 행복할 수 없다.

다양성의 존중, 그걸 넘어서 다양성을 숭상하는 것이 사회 다수 구성원의 행복을 위한 첩경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북유럽의 스웨덴 같은 나라의 평화에 대한 이야기다.

지식 기반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산업 구조가 이행한 사회에서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던 계층은 잉여인력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역사회 기반이 탄탄한 백인들은 사정이 낫겠지만 그렇지 않은 흑인이나 이민자라면?

 

스웨덴의 이케아는 '모듈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획은 스웨덴에서, 그 이외에 제작은 저임금 국가에서 외주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자국 내에 이질적인 빈곤 계층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니 사회의 통합성도 높은 것. 얀테의 법칙 등 긍정적인 문화로 잘 알려진 스웨덴도 결국 전 세계적 계층으로 인한 수혜국이라는 걸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인간에 대한 믿음

 

판사 생활을 하며

비인간적이고 격노할 만한 사건,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봤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유석 판사는

선한 인간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는다.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분석에 따르면

인류 역사는 점점 폭력성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이 폭력을 감소시킨 결정적인 힘은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 즉 근대국가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개인들은 국가를 만드는 사회계약을 체결했고, 국가가 폭력 수단을 독점함으로써 무정부 상태의 폭력으로부터 인민을 보호하게 된다. 상업의 발전 역시 더 많은 교역 상대와 물건을 교환하게 되면 상대가 죽었을 때보다 살았을 때 내게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근대 이후 폭력적인 남성 문화에서 탈피하는 여성화, 공감의 범위를 넓히는 세계주의의 흐름도 평화를 촉진시켰다. 이는 결국 자유주의적 인도주의를 향해 가치 체계를 진화시켜 온 이성의 힘이다. 이를 모두 종합하면 인류 역사가 밟아온 '문명화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책 일부 발췌)'

 

 

결국 인간은 이성적으로 사회계약을 이해해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고, 다양한 경험과 넓은 식견으로 더더욱 많은 사람을 이해해 가는 존재이다. 지구는 둥그니까... 그렇게 이해하다 보면 서로 갈등 없는 평화를 이룩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뉴스만 보면 사람 죽는 이야기가 나와서 심란한데,

그래도 세상은 점점 좋아지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희망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야겠다.

 

나 역시 선하게 살 수 있기를.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미국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에는 로봇 공학에 대한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의 연구소가 나온다.

그리고 문유석 판사는 이 모습을 미국이 미래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낙관이라고 해석한다.

 

듣고 보니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그릴 때,

한국이 선도에 서기보다는 다른 나라와의 권력관계를 고려해

그 역학관계에 따른 한국의 역할과 지위를 생각할 뿐 아닌가.

 

자연스레 미래의 주역이 되리라고, 미래를 예측하고 그려나가는 담대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문유석 판사는 개인주의자 선언을 이렇게 끝낸다.

 

집에 돌아가며 생각했다. 한 개인으로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중략)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 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결국 개인주의자 일지라도 사회에서 서로를 보듬어 살아가야 한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다른 것이기에,

 사회에서 개인의 범위를 인정하되, 그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 서로 연대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궁극적으로 개인의 행복을 가져온다.

 

마치 애덤 스미스의 이기적인 인간처럼.

인간은 선하기 때문에 남을 위해 빵을 굽고, 집을 지어주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의 이득을 위해 타인을 위한 행동을 하자 집단 전체의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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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공감이 갔던 점은 바로 문유석 판사의 '겨울의 리셋 상태'이다.

 

인생의 의미를 따지게 되고, 겨울이 되면 무기력해지는 본인의 심리 상태를 일컫는 말인데,

나는 이걸 스스로 인생 노잼시기라 명명한다.

 

 

여하튼,

문유석 판사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현재 한국,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었던 책, 「개인주의자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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