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10주년 특별판은 수상 작가들이 뽑은 베스트 7개의 작품을 엮은 소설 모음집이다.
해당 소설은 아래와 같다.
편해영-저녁의 구애
김애란-물속 골리앗
손보미-폭우
이장욱-절반 이상의 하루오
황정은-상류엔 맹금류
정지돈-건축이냐 혁명이냐
강화길-호수_다른 사람
딱히 공통의 주제를 두고 엮은 모음집은 아니라 각 소설마다 다른 주제와 소재의 이야기다.
사실 읽으면서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유와 상징이 난무하고 시간의 흐름도 제각각이라 그 내용과 깊은 주제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이래서 현대 소설을 내가 안 읽는 거였지 새삼 깨닫기도 하고 왜 수상 작가들이 베스트로 뽑은 작품들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범인은 따라가지 못하는 감성이랄까... 특히 완결이 시원하게 내용을 다 밝히고 끝나는 게 아니라서 명쾌하지 않다.
여하튼 읽으면서 몰입할 만한 글들이기는 했다.
내용의 이해와는 별개로 소설이 주는 소재와 분위기가 극적이었다. 딱히 특별한 소재들도 없는데 그렇다. 그리고 대부분 암울한 내용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이끼가 가득한 호숫가나 폭우로 칙칙한 하늘 같은 느낌의 소설들.
7개 소설 중 인상 깊었던 건 절반 이상의 하루오, 건축이냐 혁명이냐, 호수-다른 사람이다.
절반 이상의 하루오-이장욱
절반 이상의 하루오는 인도 여행을 가 만난 하루오라는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본인 치고'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하루오는 오키나와 출신이나 도쿄의 큰아버지댁으로 이주하며 다른 외모로 차별을 당하고 자살을 생각해 부산으로 여행을 왔었던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일본인이다. 부산에서 하루오는 '나라는 존재가 5cm쯤 다른 세계로 옮겨진 것 같은' 느낌으로 죽고 싶었던 마음이 사라졌고 그 뒤로 세계 여행을 다닌다. 인도에서 하루오는 자리를 비운 인도인 대신 가판대에서 물건을 팔기도 하고 시체를 태운 재를 버리는 강 옆으로 몸을 맡기고 그저 흘러내려가곤 했다. 그런 하루오가 독특한 존재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하루오는 그런 자신의 정체성을 '하루 중 절반의 하루오'라고 분리해서 설명한다.
인도에서 돌아온 뒤 '나'는 하루오를 블로그를 계속 읽으며 그녀의 삶을 읽어나가지만 따로 연락은 하지 않고 시간은 흘러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글로벌 채용을 진행해 일본인 채용을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하루오와 매우 닮은, 그러나 '하라 교스케'라는 이름을 쓰는 지원자를 만난다. '나'는 따로 전화까지 하며 하루오가 아니냐 물었지만, 교스케는 하루오라는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했다며 대답한다.
지금은 헤어져 결혼을 한 여자친구가 과거에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하루오를 봤다고 했었다. '일본인 답지 않게 격렬하게 항의하던' 하루오가 그녀를 보자 씨익 웃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취업 면접에서 면접지원자로 '하라 교스케'라는 사람을 만난 '나'.
하루오가 자신의 정체성을 이분화한다는 걸 알고 있는 '나'는 절반 이상의 하루오를 만난 다른 여행지에서의 사람들과 달리 절반 미만의 평범한 하루오를 본다. 그리고 계속 자신이 하루오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교스케에게 자신이 착각한 것 같다고, 하루오는 아마 지금도 여행 중일 것이라고 말하며, 인도로 떠난다.
"당신은 혹시 다카하시 하루오를 아십니까? - 절반 이상의 하루오라면, 아마도."
이 소설의 주제가 뭔지 사실 모르겠다. 하지만 읽으면서 하루오라는 독특한 존재에 매력을 느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분리해 균형에 맞춰 살아가려는 하루오. 과연 그녀는 절반 미만의 하루오로 살며 행복을 느낄까.
누구나 마음 속으로 현재의 나의 모습 말고 다른 모습을 꿈꾼 적이 있을 것이다.
현재의 나와는 달리 나의 이상향을 모아놓은 완벽한 모습. 현실에서 도피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정체성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 그게 우리 모두의 마음속 절반 이상의 하루오 아닐까.
건축이냐, 혁명이냐-정지돈
나는 소설을 볼 때 배경지식을 미리 검색하지 않고 본다. 그래서 이 소설이 이구라는 실존인물을 다룬 다는 것을 소설 중간쯤에서야 알았다. 이 글은 이구라는 대한제국 황태손의 일대기를 '건축'이라는 소재로 전개했다. 사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건축물과, 특히 그 건축가로 빗대어 시간의 흐름대로 전개한 걸 수도 있다.
소설 속 이구라는 인물은 황태손으로서의 정체성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도 없다. 그저 일본에서 살고 뉴욕으로 건너가 건축가로서 활동했을 뿐. 그저 박정희 군사정권의 결정으로 한국으로 귀국한 건축가. 서울대학교에서 건축을 가르치지만 학생들에게는 크게 열정이 없고,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에게 그저 유학으로는 필라델피아 좋다는 말을 하는.
소설은 전반적으로 소재들을 대조하며 진행된다.
밤섬 폭파의 기억과 새로 짓는 건축가. 대한제국의 황태손이자 일본 국적자. 건축물을 완공하고 그 유리창을 깬 고든의 행위가 프로테스트냐 익스히빗이냐. 일제강점기, 6.25전쟁과 군사정권을 거쳐 끊임없이 파괴되고 새로 지어지는 대한민국의 모습. 폐허 위에 만들어지는 새로운 건축물들은 과연 건축일까 혁명일까.
공민왕 사당은 문을 열어놓아 주민들이 오가는데 부군당은 왜 잠가놓냐 물으니 부군당은 왕이 아니라 신을 모시는 곳이라 그렇다고 대답했다.
호수-다른 사람 - 강화길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더니 이렇게 충격적인 소설이 마지막에 있다니.
소설은 민영의 의식불명을 시작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연쇄적인 폭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호수는 그 폭력이 생생한 장소이다.
민영이 반죽음 상태로 발견되고, 미자네도 남편의 폭력에 못 이겨 빨래를 하러 나오는 도피처였으나 어린 남학생들에게 가정폭력을 당해 다 빠진 머리를 감춘 머리 수건을 뺏기는 2차 가해를 당하는 곳. 그런 미자네를 도와주자 오히려 남학생들이 민영을 '너도 세컨드지?'라며 비웃고 매도하는 장소. 진영에게 폭력을 가하던 남자 친구가 장난을 못 받아준다며 진영을 오히려 책하던 장소.
이 모든 생생한 폭력의 목격지이자 발생지가 호수이다.
그리고 이 외에도 폭력의 장소는 다양하게 소개된다. 매일 우리가 타고다니는 대중교통, 친구들과 자주 가는 술집, 그리고 자신의 집 앞까지. 대중교통에서 마음껏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지만 그 누구도 제재하지 않는 버스. 술자리가 파하고 집까지 쫓아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마음에 들어서 술집에서부터 쫓아왔다'며 여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집에 들어갈 때까지 쳐다보며 '연락을 꼭 받으라'던 남자. 이런 폭력들의 묘사가 지나치게 일상적이며, 발생하는 장소와 가해자도 일상적이다. 그리고, 현실적이다.
굳이 '호수'라는 현실과 좀 분리된 장소를 설정하지 않더라도, 폭력은 너무나 일상적이다. 실제로 주변 친구들도 혼자 밤거리를 돌아다니기 무서워 하고, 주변에서 큰소리를 내는 남자들이 있으면 무서워 피한다. 술집에서 굳이 대중교통까지 따라 타며 쫓아와 여기까지 왔는데 번호라도 달라며, 직접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어 거짓 번호를 준 게 아니라는 것까지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폭력들에 제제는 전혀 없다.
오히려 가해자는 피해자가 받은 폭력의 피해보다는 피해자가 자신을 무서워했는지, 폭력의 상흔들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 사실만 은폐하려고 한다. 사실 은폐라기 보다 어쩌면 그들은 정말 그들이 가하는 폭력이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들은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가해자는 무지하고 처벌은 없고.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그랬어야지. 그러게 호수에 왜 갔느냐고?"
"야, 너도 세컨드지?"
"내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해요?"
정말 숱하게 겪었던 일이고 주변에서 많이 듣던 너무나도 현실적인 폭력들이라 읽으면서 무섭고 답답했다. 피해자만 느끼는 감정이겠지. 피해자 이외의 사람들은 절대 이해 못 할. 근데 그래서 호수에서 발견한 날카로운 막대기 같은 건 뭐지?
소설은 앉은자리에서 다 읽을 정도로 몰입력이 좋다. 하나의 소재를 묘사하고 확장시키며 감정을 깊이 건드린다.
대한민국의 젊은 작가들의 필력과 특징적인 감성, 분위기를 보고 싶다는 추천하는 책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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