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피프티피플-정세랑

whateverilike 2022. 3. 2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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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조각 같이 일상적으로 엮여있는 인드라망. 그 안에 익숙하지만 낯선 얼굴들.

 

 

 

 


 

 

 

 

피프티피플은 말 그대로 50명의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삶은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연결된다.

병원에서의 환자, 그 병원의 근무자. 환자의 가족, 환자의 가족의 친구 등등. 인물들의 관계는 점점 넓어져 간다.

 

 

 

 

나의 삶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그 반대로 영향을 받는 모습들이 꽤나 익숙하다. 가십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먼 사람의 강력한 경험들이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느낄 때, 사회는 역시 좁구나 새삼 느낀다.

 

그리 친하지 않았던 친구가 남자 친구에게 죽임을 당하자 대학에 들어가 친구의 스타일대로 옷을 입고 그 정체성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던가, 엄마의 외양을 닮지 않아 그녀에게 학대를 당하던 첫째 딸이 엄마의 옛 연인을 만나 엄마를 용서하는 계기가 된다던가.

 

 

 

소설은 지나치게 고통을 미화하거나 개인의 불행이나 잘못을 합리화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등장인물들은 모두 친근하고,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가도 어디서 한번쯤은 봤을 법하고, 익숙하다. 나는 과연 내가 살아온 과정에게 누구의 영향을 받고,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을까. 

 

 

 

간접적으로만 서로의 삶을 접하던 그들이 영화관 화재사건으로 만나 서로 도울 때, 그들의 삶은 실체로 연결된다. 

영화관에 간 건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다 선택한 일상이었겠지만, 언제 어떻게 일어날 지 모르는 우연은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한 연결고리든 서로 연관 있는 그들이 힘을 합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상대를 파악하며 생존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달성한다.

 

 

이게 우리 개인이 살아가는 삶이자, 공동체를 가장 잘 묘사하는 대목이 아닐까.

 

 

 

 

 

 

단순히 50여명의 인생을 병렬적으로 나열해놓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사실은 인생 자체에 대한 성장기. 

 

 

등장인물은 모두 결핍을 갖고 있다.

심각한 결핍이건 아니건. 사람은 누구나 결핍을 가지니까. 그 결핍을 채우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결핍을 채우는 과정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거나 타인에게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준다.

 

분노조절장애 동생에게 학대를 당한 한영이 자취를 시작할 때 룸메이트가 되어줌으로써 도움을 친구에게, 그 친구가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할 때 어색하지 않고 지지해주는 지원군이 되듯이. 동생이 정신병동에 입원해 그의 난동을 막는 일용직 직원이 자신의 직업에 사명감을 느끼듯이. 누군가의 결핍이나 문제점은 타인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연과 성장이 생긴다.

 

 

그 성장기를 따라가다 보면, 각 인물들의 삶에서 공감가거나 인상적인 몇 가지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 마흔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좋은 수가 나오지 않게 조작된 주사위를 매일 던지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게 있다.


* 극악무도한 살인자라도 감옥 안에서 아프거나 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은 어딘가 동열을 안심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인권이 적어도 어떤 하한선에서는 실체를 가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중략) 청소년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람이 자신의 자녀가 아프다며 슬퍼할 때 동열은 소화불량 같은 걸 느낀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처음에는 이름이 잘 안 외워져 인물 간의 연관성을 인물에 대한 묘사나 인물의 스토리를 통해 파악했다면, 뒤로 갈수록 이름들이 외워진다는 것이었다! 원래 낯선 사람보다 익숙한 사람의 이름이 잘 외워지듯이, 점점 등장인물들의 얼굴이 보이는 듯하고, 그래서 이름도 머릿속에 남더라.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안녕을 바라며 함께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한사람이라도 당신을 닮았기를, 당신의 목소리로 말하기를 바랍니다.

바로 옆자리의 퍼즐처럼 가까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 "

 

 

 

 

 

 


 

 

 

오랜만에 찾은 문체가 마음에 드는 작가이다. 담담하지만 예리하고 일상적이지만 심금을 울리는 문장들. 

 

 

 

문득 외로움을 느낄 때, 타인 때문에 인생이 고단할 때, 타인의 삶이 궁금해질 때, 내 삶의 궤적 중 어디일까 혼란스러워질 때 공감을 통한 위로가 되는 책,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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