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민담형 인간 - 신동흔

whateverilike 2022. 5. 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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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이야기.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투박하지만 유쾌한 위로.

 

 

 

 

 

 

 

민담이란 무엇일까?

 

소설과는 달리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고 구전설화에 더 가까운 이야기들로 막스 뤼터의 <유럽의 민담>에 따르면 민담을 민담답게 만드는 요소는 일차원성, 평면성, 추상성, 고립성 등이다. 소설의 서사처럼 깊이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라 일컬을 만한 시간과의 관련성도 없다. 그냥 늘 제 모습 그대로 움직이는 인물이 나오고, 그럼에도 그 행보가 놀라움과 두려움을 유발하며 세상을 흔든다.

 

 

흥부와 놀부, 잭과 콩나무, 장화홍련, 개구리 왕자 등 국적, 시대를 불문하고 민담은 늘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왔다. 읽다 보면 교훈도 없고 주제도 없고 허탈한가 싶다가도 웃음이 난다. 그림형제가 동화전집에 남겨놨던 것처럼, 민담 전승 문학은 인류의 모든 삶을 촉촉하게 적시는 영원한 샘에서 나오는 영원한 타당한 형식이다.

 

 

 

 

 

한 번뿐인 인생, 트릭스터여도 괜찮아.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결국 민담형 인간의 효용이다. 뚜렷한 목적을 갖고 정해진 대로 행하는 소설형 인간과의 대척점에 선 인물. 원래 생겨난 그대로 움직이는 것. 그렇게 스스로 하나의 우주인 사람. 그런 사람을 일컬어 트릭스터라 부른다.

 

 

 

트릭스터는 '꼬마 재봉사'나 '정만서'처럼 민담에서 곧잘 등장하는 인물이다. 

 

정만서는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어 한 이웃집에 부탁하지만 집주인은 화장실 이용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이에 정만서는 1원의 이용료를 내고 화장실을 이용한 뒤, 다시 나오지 않았다. 1원에 화장실을 샀다는 것이다. 집주인이 나오라 애원을 해도 나오지 않고 결국 10전을 돌려받고 나서야 나온다. 또한 장만서는 죽을 때 가족들이 그를 둘러싸고 '이리 죽으면 어떡해요....'라고 슬퍼하자 '죽어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누?'라고 답변했다는 인물이다.

 

꼬마 재봉사 역시 파리를 죽이려 휘두른 혁대로 7마리를 한 번에 잡자 '7명을 한 번에 죽였다'는 허리띠를 매고 다녀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7명의 사람을 한 번에 죽인 대단한 장군으로 오해하게끔 하고 이런저런 꾀를 부려 공주와 결혼하고 왕의 재산을 다 넘겨받게 된다. 

 

 

 

트릭스터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은 단순하다.

 

계획 없이 닥치는 대로 사는 것. 그렇게 살다 문제가 생겨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단순하게 극복한다. '이겨낸'다기보다는 그저 자연스레 지나간다. 또한 별 거 아닌 개인들이 모여 '동행'하며 각자의 삶을 개선하기도 한다. 브레멘 음악단에서 늙고 쓸모가 없어졌다며 버림받았지만 그들끼리 모여 도둑을 내쫓고 아늑한 집을 얻어낸다. 그것이 그들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또한 그들의 원래 목적이었던 음악단으로 결성은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버림받은 삶에서 주체적으로 살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가끔 트릭스터는 제 가정을 챙기지 못하거나 남을 골리는 인물로 비호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트릭스터는 윤리학이 아닌 존재론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어울리는 군상이다. 그저 인간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윤리도, 반윤리도 아니고, 세간의 평가는 그들에겐 필요 없다.

 

 

 

 

 

그런 인간 군상이 많이 보여야 한다.

 

요즘은 열심히, 치열하게 사는 인간 군상이 점점 가시화된다. 소위 '갓생'을 산다고. 습관을 형성해주는 애플리케이션들이 유행하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통해 자신이 오늘 하루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인증샷을 게시하기도 한다. 그렇게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게 되고, 열심히 살지 못하는 자신을 비난한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위로형 에세이가 유행한 지 얼마나 됐다고 요즘은 다 바쁘게 사는 거 같다.

 

 

물론 신화적 서사의 소설형 인간은 멋있다. 여러 시련을 이겨내고 세계 최고의 목표를 이루어낸다. 목표지향적이고 향상심이 있고 당당하다. 그러나 그렇게 바쁘고 치열하게 살 필요만은 없다. 보편적인 성공의 가치를 따르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것, 자신의 존재를 믿고 나아가라. 자기 확신으로 스스로를 믿으면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멋지게 살지 않아도, 제멋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걸 보여주는 인물이 많아진다면 우리도 그에 집착하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민담형 인간이야말로, 현대사회에 필요한 인간 군상임에는 틀림없다.

 

 

 

 

 

 


 

 

 

 

읽으면서 좀 순박한? 해맑은 교수님이 떠오르는 듯했다.  여러 가지 민담들도 옛날이야기 듣듯이 술술 읽혔다. 특히, <한국 구비문학 대계>의 가치에 대한 감사와, 민담을 녹음된 대로 어감을 최대한 살려서 서술하는 데에서 민담에 대한 교수님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세계의 민담들과 그로 대표되는 인물들에게서 마음 편한 위로를 받고 싶다면 추천할 만한 책, 신동흔의 민담형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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